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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와 한국에서 함께한 나흘

2023년 11월, 폴란드의 임신중지 활동가이자 올해의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사례자이기도 한 유스티나 위드진스카Justyna Wydrzynska, 이하 유스티나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유스티나는 수많은 활동과 개인 일정 속에서도, 임신중지가 보호되지 못하는 한국과 폴란드의 유사한 상황을 환기하기 위해 한국에 꼭 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와 함께한 유스티나의 방한 일정은 국제앰네스티 회원들과의 만남, 국내 활동가들과의 대담,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으로 아주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유스티나와 함께한 나흘을 이 글에서 만나보세요!

1. 언론 인터뷰

유스티나의 방한에 많은 국내 언론사에서 관심을 표했습니다. 경향신문, 여성신문, 한겨레신문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주로 임신중지가 현재 불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폴란드의 상황과, 실제로 유죄판결로 사회봉사형을 선고받은 유스티나의 향후 계획,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임신중지가 인권임을 알리며 활동할 수 있는 동력에 대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국내 성과 재생산권리 전문가인 김한선혜 이화여대 교수님과의 대담으로 진행된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형법상의 ‘낙태죄’가 사라졌으나 여전히 임신중지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한국의 상황과 폴란드의 상황을 비교하며, 양국의 나아갈 길을 찾는 대화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2. 국회간담회

유스티나는 한국의 임신중지 관련 상황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민 온 웹’ 사이트를 불법 사이트로 접속을 차단하고, 법원에서도 해당 조치를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에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유스티나는 정책전문가들에게 유산유도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국회 간담회를 통해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했습니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영인 의원과 남인순 의원,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권인숙 의원과 한국지부의 공동주최로 11월 24일 국회간담회 <폴란드 임신중지 인권활동가 유스티나 내한 기념 간담회: 헌법불합치 4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묻다>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간담회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의사인 윤정원님의 발표를 통해 한국의 임신중지 현황을 생생히 알 수 있었고, 최근 관련법 제정/개정안을 발표한 의원들의 유산유도제 도입에 대한 의지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 대학생 대상 강연

유스티나가 유죄판결을 받은 올해 3월 재판 이전부터, 유스티나의 무죄를 촉구하는 탄원에 국내 지지자들도 많이 참여해주신 바 있었는데요. 긴 시간 동안 유스티나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 주신 한국지부 회원을 비롯한 국내 지지자들과의 만남 시간도 여러 차례 마련되었습니다.

첫날인 22일,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와의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자리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다양한 대학에서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 폴란드 대사관 앞 기자회견

유스티나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유스티나와 한국지부 활동가들은 11월 23일 폴란드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한국지부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도운 유스티나의 행위는 범죄가 아닌 용감한 인권옹호행위”이며, “인권옹호자인 유스티나에게 앞으로도 연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유스티나는 “오늘의 연대는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임신중지를 도왔다는 이유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모든 활동가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연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5. 대중과의 만남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대중과의 만남에는 국내에서 동일한 주제로 활동하는 활동가, 의사, 작가분들이 함께 패널로 참석해 주셨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건강을 위한 센터 셰어이하 셰어’의 나영님, ‘색다른의원’의 원장인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님, <검은 시위>의 저자 정은희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이날의 모습과 토론 내용을 함께 확인해 보세요!

나영: 기존에 임신중지를 처벌하던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무효가 된 이후, 많은 병원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이와 관련하여 공식적인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서, 임신중지 시술에 대한 수가가 정해지지 않아 병원마다 제각각으로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임신중지가 처벌의 영역에 너무 오래 존재해왔기 때문에, 의사들도 낙인 없이, 차별 없이 임신중지를 제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앞으로 유산유도제의 도입과정, 도입 이후에도 전문가에게만 정보와 결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관련된 정보를 잘 알고 나누어야 합니다.

유스티나: 나영님 말씀대로, 정말 중요한 것은 의료체계에서 사람들이 임신중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에요. 폴란드에서는 현재 유산유도제가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저희와 같은 단체가 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저희 같은 단체가 없다면 암시장에서 아주 비싼 돈을 내고 유산유도제를 구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간혹 법이 허용하는 이유에서 임신중지를 하려고 하더라도, 의사의 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낙인이나 편견에 노출되기도 하죠. 아주 제한적인 합법적 이유로 임신중지를 받으려 해도, 폴란드의 의사들은 ‘양심에 따른 시술(처방) 거부’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영님의 말씀대로 의사들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예훈: 역사적으로 가족계획사업으로 인구를 줄여야 하던 상황에서는 임신중지 시술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었고, 오히려 강제적으로 불임시술이 이루어지기도 했죠. 그 중심에 의사가 있었고, 한국에서 임신중지는 관례적으로 직업으로 해 왔던 역사가 더 깁니다.

사실 의료의 최종 목적은 ‘셀프 케어’, 환자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유산유도제 도입을 거부하고, 도입한다면 의사만 처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미 WHO를 통해 안전하다고 승인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약임에도 불구하고요. 더 많은 의료전문가들이 본인의 이익보다는 많은 이들의 성과 재생산건강에 책임감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은희: 폴란드는 임신중지와 관련한 독특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낙태죄를 가진 나라이지만, 20세기 중반에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임신중지 형태를 보장했었지요. 하지만 20년대 후반, 폴란드 체제가 가톨릭교회의 지원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면서, 엄격한 낙태죄 역시 형법에 도입됩니다.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좌파연합 역시 가톨릭교회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낙태죄를 고수했습니다.

이렇게 폴란드 집권세력은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듯하다가, 임신과 출산이 필요할 때는 낙태죄를 심화하며 성과 재생산 권리를 통제하는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고,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되었지만 공적 지원은 배제된 현 상황도 마찬가지이죠.

모든 일정을 마치며, 유스티나는 국제앰네스티의 편지쓰기 캠페인Write for Rights에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여러분의 편지 캠페인에 큰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보내주신 3만 5천통의 편지는 실제로 제가 재판을 받을 때 모두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연대와 관심 덕분에 제가 실형이 아닌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스티나의 방한은 유스티나뿐만 아니라, 성과 재생산권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내 대중들과 편지쓰기 캠페인에 참여한 한국지부 지지자들 모두에게 국제적 연대의 힘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시간이었습니다. 유스티나는 현재 1심 판결에 항소하며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한국지부 역시 계속해서 유스티나를 위한 탄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유스티나를 지지하고 싶어지셨다면, 지금 바로 탄원에 참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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